한 세대 전만 해도 외국은 정말 먼 곳이었습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곳,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비쳐졌지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사회과부도를 통해 처음 접했던 것이 외국이었습니다. 나와는 관계없는 사실을 달달 외우느라 고생만 했던 지리공부였습니다. 그리고 한 세대 전에만 해도 우리는 단군의 자손으로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거기에 자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지구촌’이라는 말마저 진부할 만큼 세계가 가까워진 오늘. 우리 아이들은 싫든 좋든 다른 피부색,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고, 세계를 무대로 뛰어야 합니다. 세계를 교실 속으로, 아이들의 가슴 속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얼마전 하인스 워드 선수의 방한으로 다민족, 다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껏 끓어올랐습니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교육 현주소는 어디쯤일까요.

#3년 지나다보니 노하우도 제법 쌓여

“아르헨티나는 사람보다 소의 숫자가 훨씬 많은 나라예요. 그런데 가죽가공 실력은 한국 사람들이 훨씬 뛰어나 아르헨티나 가죽으로 만든 완제품을 한국에서 역수입하지요. 또 아르헨티나는 라틴어로 ‘은’이라는 뜻인 만큼 은제품도 많아요. …이건 무슨 춤 추는 인형일까요? 맞아요. 탱고.”

경기 부천시 원종동 오정초등학교 6학년 6반. 한달에 두번씩 찾아오는 재량학습시간이다. 담임인 김갑성 선생님(51)은 재량학습때마다 국제문화 이해교육을 진행한다. 3년이 지나다 보니 이젠 수업에도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였다.

이날 수업은 김선생님에겐 특별한 시간. 그동안 몇 번의 수업은 강의식으로 진행했지만 오늘은 1997년부터 4년간 해외 파견 교사로 근무했던 아르헨티나의 문화를 통해 문화의 상대성을 알려주기로 했다. 현지에서의 경험이 있는 만큼 선생님은 집에서 여러가지 물건들도 가져와 생생한 설명을 곁들였다.

다음은 선생님이 이틀전 미리 내준 주제에 따라 여섯 모둠이 함께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 우리나라의 혼혈인과 하인스 워드, 이주근로자 현황, 이주근로자의 자녀들, 아르헨티나 조사, 아르헨티나의 차 문화 체험, 한국의 찌개문화 체험 등 팀의 주제에 따라 학생들은 발표와 역할극, 편지 읽기 등을 진행했다.

한국 음식문화를 체험하는 5조는 한복을 입고 미리 준비한 어묵찌개를 한 숟가락씩 떠먹었고, 6조는 선생님 설명에 따라 집에서 보자기 2장을 연결해 만든 아르헨티나의 전통복장 가우초를 입고 하나의 빨대로 돌려마시는 마떼 마시기 체험을 했다.

“올라.” 6모둠 전체가 옆의 친구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포옹을 하며 차례차례 빨대에 입을 가져가자 반 전체에 폭소가 터졌다. 처음 보는 마떼 마시기 장면이 아이들에겐 가장 인기 있었던 시간.

“마떼 마시는 걸 본 느낌이 어땠어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저마다 “약간 더럽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찝찝했어요” “기분이 좀 이상했어요”라는 답을 내놨다.

이어 “찌개를 같이 먹는 건 어떻게 보여요?”라는 물음엔 “맛있게 보여요”라고 얘기하면서 아이들도 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침이 많이 섞이잖아요. 외국인들이 보면 왜 저런 식으로 먹나 의아해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오늘 수업에서 느낀 점을 정리하는 시간.

“더럽다, 안 더럽다 하는 건 생각의 차이라는 걸 알았어요.” “이주노동자와 자녀, 혼혈인들이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만약 우리 반에 그런 아이가 있으면 따뜻하게 대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은 이 어려운 주제들을 가슴으로 자연스럽게 체득해 가고 있었다.

김선생님이 국제이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해외파견 근무를 하며 생활 속의 문화가 달라 갈등을 느끼는 한국 이민자들을 목격하면서부터. 귀국 후엔 교육대학원에서 한국내 다문화 가정의 자녀교육 실태를 공부했고, 유네스코 아·태 국제이해교육원에서 교사연수를 받으며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과는 ‘너나울’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보도 나누며 교육자료도 만들고 있다.

“요즘은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축구를 매개로 스포츠에서의 남녀차별 문제와 축구공 만드는 제3세계 노동자 어린이로 본 인권문제, 환경문제 등을 얘기하고 있어요. 당장은 큰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가랑비에 옷깃이 젖듯 아이들의 가슴 속에도 보편적인 가치가 스며들겠죠.” 김교사의 꿈은 글로벌 시대, 세계인이 함께 꾸어야 하는 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