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5일. 경기 화성시 장안면 금의리의 제코산업. 섬유보강제를 생산하는 이곳의 기계는 24시간 돌아간다. 기계가 쉬지 않고 가동될 수 있는 것은 기계가 쏟아내는 제품들을 제때 포장하고 쌓는 ‘일꾼’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모두가 외국인들이다.

그중 한 명인 필리핀 이주노동자 로물루스(35)는 “힘은 들지만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 ‘제2의 고국’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어 실력이 능란하다. 실제로 그의 ‘젊은 날의 기억’의 절반쯤은 한국에서의 생활로 채워져 있다. 1997년 한국에 들어와 7년여 동안 유리공장 등에서 일하다 2003년 필리핀으로 돌아갔다가 올 3월 외국인 고용허가제 입국자로 다시 입국했다.

이 공장에는 로물루스 말고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이주노동자가 4명 더 있다. 회사로선 ‘없어선 안 될 존재’들이다. 주·야간으로 나뉘어 12시간씩 일한다. 묵묵히.

이 회사 김순용 대표(44)는 “이들이 없으면 기계 가동은 물론 회사 문을 닫을 형편”이라며 “내국인들은 월급을 더 준다고 해도 구하기가 어렵고, 막상 채용을 해도 1주일을 못 버티고 그만두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일하면서도 업무지시도 잘 따르고 성실한 데다 일도 잘하는 회사의 보배들”이라고 덧붙였다.

이주노동자 유입 역사가 20여년 되면서 경기 화성이나 안산 등의 공단이나 공장 밀집지대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곳에서 한국인 근로자들만 일하는 공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국내 노동시장의 단순기능 인력에 대한 노동력 부족현상이 심화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노동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이들 이방인은 ‘인력이 바닥난 3D기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법무부와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국내에는 34만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취업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4만여명을 포함, 합법체류자는 15만명. 미등록(불법) 이주노동자는 그보다 더 많아 18만9천여명이다.

지난해부터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출신국별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몽골, 스리랑카 순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주로 제조업과 건설업을 비롯해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최근에는 농축산업과 연근해 어업에까지 업종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노동시장에서의 이주노동자 역할과 수요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 중소기업의 상반기 이주노동자 구인신청은 5만4천여명에 이르지만 입국인원은 아직 2만명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실시되면서 외국인력의 대거 이탈로 경기지역 상당수 제조업들이 타격을 입기도 했다.

이같은 인력공급 불합리성을 제거하기 위해 지난해 8월 도입된 것이 외국인 고용허가제다. 이주노동자들이 노동 3권을 보장받으면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이 중앙고용정보원의 고용허가제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용허가제에 따라 취업한 이주노동자의 98.2%가 고용보험에 가입했고, 건강보험에는 65.4%, 산재보험에는 97.6%가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은 아직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국 12개 이주노동자 관련단체들의 연대모임인 ‘이주노동자인권연대’가 지난 8월 외국인 고용허가제 시행 1년을 맞으면서 발표한 실태보고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계약에 대한 일방적인 무시와 변경 강요, 장기간의 임금체불, 최저임금 지급의무 위반, 폭행·협박·인격모독 등 사업주에 의한 불법행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연대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 1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9%가 다른 회사로 옮기고 싶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43.9%가 장시간 및 과다한 노동을 이유로 꼽았다. 또 고용주와 한국인 노동자의 폭언과 신체적 폭력 때문이라는 응답도 9.6%나 됐다.

한국노동연구원 유길상 선임연구원은 “이주노동자들의 3D업종 취업은 내국인의 일자리 착취가 아니라 인력부족을 해소하는 등 일정부분 보완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외국인 근로자 도입이 노동시장 및 경제·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 분석과 우수 외국인력 유치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경태영기자 kyeo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