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단속을 피해 시화공단의 한 선교센터로 피신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건물 옥상에 올라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문제)다음 중 한국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①중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 일하러 온 중국 동포

②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 태어나 한국에서 살아 온 자녀

③한국에서 나고 자란 필리핀 이주노동자의 자녀

④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 이민가정의 자녀

답은 ①②④. ①의 경우 현재 중국인이지만 부모가 한국국적을 회복하면 특별귀화를 신청해 한국인이 될 수 있다. ②, ④는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 모두를 갖고 있어 22세 이전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③의 경우 이주 노동자에게는 귀화의 기회가 없어 자녀 역시 한국인이 될 수 없다.

이는 혈통주의 원칙의 국적법만을 따진 결과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20세 한국 청년과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한국에 완전히 동화된 20세 필리핀 청년 중 누가 더 ‘한국인’에 가까울까.

1980년 후반 이후 이출(移出)국에서 이입(移入)국으로 바뀐 한국은 이미 이민 국가의 대열에 들어선 지 오래다. 심각한 고령화·저출산 현상으로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력이 유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4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이 전체 인구의 35% 정도를 이민자로 수용해야 현재 수준의 노동력 공급을 2050년에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의 이민행정은 이제 막 영주제도를 도입한 걸음마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소극적·폐쇄적인 이민정책=외국인의 귀화와 이주를 규정하고 있는 법은 국적법과 출입국관리법 두가지다. 법 이름에서 보이듯 외국인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출입 관리’ 대상에 불과하다. 70만명에 육박하는 국내 체류 외국인에 대한 별도의 법률은 아직 없다.

2001년 ‘장기체류 외국인의 영주권 취득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된 적이 있지만 화교의 법적지위를 개선하려는 게 주목적이었다. 그나마 외국인의 정주를 쉽게 허용할 수 없다는 여론으로 입법에 실패했고 2002년 영주권 조항이 출입국관리법 안에 신설되는 데 그쳤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도중진 위원은 “이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적, 외국인 등록, 체류 외국인 관리, 국경 관리 등을 총괄하는 ‘이민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문제가 터지면 수습하는 소극적 방식을 벗어나 다문화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체계적인 법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높기만 한 영주권의 ‘벽’=굳이 국적을 얻을 필요 없이 한국에서 거주하며 일하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을 유치할 수 있는 방안이 영주권 제도다. 그러나 신설 3년째인 한국의 영주제도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영주(F-5)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2002년 6,022명에서 2005년 8월 기준 1만9백7명 정도로 국내 거주 외국인 수를 감안하면 증가폭이 미미하다. 게다가 영주 자격자 대부분이 화교들이어서 전문인력 유치라는 취지가 무색한 상황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체류에 별 문제가 없는 외국 전문인력들이 굳이 영주권을 얻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의 경우도 영주권을 얻으려면 5년을 체류해야 하는 데 반해 귀화를 신청하기 위한 체류조건은 2년이다.

때문에 어려운 영주권 대신 귀화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귀화신청자는 2002년 3,720명, 2003년 6,024명, 2004년 1만93명으로 증가했고 2005년 8월 기준 1만1천4백74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된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같은 모순을 다소 개선했다. 거주(F-2) 외에도 주재(D-7)~특별활동(E-7)비자 소지자가 최대 5년만 체류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는 영주와 귀화 체류조건을 모두 2년으로 통일해 선택의 기회를 줬다.

◇외국인 노동자는 여전히 ‘논외’=외국인 노동자는 국내에 90일 이상 체류하는 70만 외국인 중 40만명에 달할 정도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에서 영주권 취득 및 귀화가 가능한 자는 전문인력에만 한정돼 있다. 단순 노무인력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최장기간은 3년으로, 재입국하려면 출국한 뒤 1~6개월이 지나야 한다. 이는 귀화·영주의 기회(체류기간 5년)를 원천 봉쇄해 한국에 정착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법무부는 국익을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단기순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관계자는 “노동부 등 6개 부처와 공동출자하는 방식으로 외국인력관리를 총괄하는 ‘외국인체류지원공단’을 설립해 체불임금, 의사소통 문제 등 외국인 근로자의 고충처리, 이탈방지 등 사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박천응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은 “외국인들이 적응하고 일 할만 하면 쫓아내는 방식은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고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며 “전문기술인력에게만 영주권을 줘야 한다면 자격시험 등을 마련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숙련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