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국동 사거리에서 헌법재판소 길을 따라 한 300여m쯤 올라가면 가전제품 대리점 3층에 허름한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共感’이란 팻말이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스무평 남짓 공간에 열댓 명이 옹기종기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다. 처서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곡식 익히는 햇볕이 아직도 따가운 초가을 오후.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자연풍으로 더위를 식혀보지만 황필규(38) 변호사는 연방 땀을 흘리면서 인턴들과 토론하고 있다.

“많이 덥죠” 하면서 손수 주스를 내오는 이는 염형국(32) 변호사. 손님 접대가 손에 익은 품이다. 손님 접대는 물론 당사자들 몫이다. 저쪽에서 다소곳이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던 소라미(32·여) 변호사는 “같이 얘기 좀 하자”는 권유에 자리를 옮기더니 지난 주말 승소한 소송 얘기를 사분사분 시작한다.

여성 문제를 주로 다루는 그는 “국제결혼해서 들어온 필리핀 아주머니가 결혼생활 5년 동안 남편으로부터 폭력과 홀대를 받으면서도 국적조차 얻지 못한 사례를 맡아 해결했다”고 조금은 뿌듯한 표정이다. 우리 국적까지 취득한 사례론 처음이란다.

정정훈(36) 변호사. 이주노동자와 난민 문제 등이 전공인 그는 빙긋이 웃더니 “황 변호사님께 듣는 것이 좋겠다.”고 양보한다. 황 변호사는 우리나라에 입국해 조국의 민주화운동을 추진해오다 2000년 망명을 신청한 미얀마 국적 난민 신청자 9명에 대한 심사가 5년을 끌다가 지난 봄 법무부로부터 느닷없이 불가 판정을 받은 후,2차 판정도 1주 만에 또 불가 판정이 난 건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끝까지 싸워 반드시 이기겠다”고 전의를 불태운다.

이어서 사무실로 들어온 이는 시민단체의 의뢰로 지방자치단체 비리 소송을 진행 중인 김영수(36) 변호사.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있지만 열외는 없다. 가장 궁금한 것 하나. 도대체 이들은 왜 특권과 탄탄대로가 보장된 판검사,변호사의 길을 마다하고 좁고 험난한 길을 택한 것일까.

“연수원 시절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박원순 변호사의 특강을 듣고 ‘이 길이다’ 결심했죠.”

사법연수원 33기인 염 변호사는 수료 전부터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면서 2003년 12월 변호사 모집 공고를 내 동기인 정·김·소 변호사를 영입하고 작년 1월 공감을 출범시킨다. 박 변호사의 특강에 ‘의식화된’ 염 변호사가 동기생을 끌어들인 셈. 그리고 올해 황 변호사를 영입해 풀타임 변호사 5명의 진용을 갖췄다.

집안살림을 도맡은 전영주 간사와 펠로로 참여하고 있는 윤정원 미국변호사,그리고 30여명의 인턴이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의 눈물을 닦아주는 아름다운 섬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돕고 있는 기관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경기도 노인학대예방센터,씨알가정법률상담소,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한국농아인협회 등. 이들 단체를 위한 무료 변호 업무 외에 공익활동 중개사업,공익활동가 법률교육,공익소송,공익법 연구 등의 활동도 펴고 있다.

‘아름다운 변호사’ 한 사람의 급여는 대기업 대졸 초임도 안되는 월 170만원선. 그것도 후원자들이 기탁한 기부금에서 지급되는데,언제나 아슬아슬하단다.

“그래도 한 호봉 올라 작년보다 한 5만원쯤 더 받는다”는 소 변호사의 볼우물이 유난히 아름답다. 가끔씩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도 한데….

“대학이나 사법연수원 시절에서 약간만 변하겠다고 맘만 먹으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외제차 룸살롱 고급양주 등의 화려한 유혹을 접어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각자 추렴해 선술집에서 닭볶음에 한잔 마시면 간단하다는 황 변호사의 표정에선 세속적 가치를 초개처럼 버린 초극자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 다가감으로써 스스로 신나고 즐겁게 일할 수 있어 좋고,또 재미있는 직장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내내 공감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들. 하지만 ‘좋은 길’이면서도 ‘좁은 길’을 택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있었다. 배우자들이야 다들 이해해줬지만 부모를 설득하는 덴 어려움이 뒤따랐단다.

“하지만 요즘은 누구보다 이해해주시는 든든한 후원자가 바로 부모님”이라고 정 변호사는 자랑한다.

정작 이들의 걱정은 동료 공익변호사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도면 로펌마다 최소 1명의 공익전담 변호사가 있어야 한단다. 향응접대나 수임비리는커녕 간섭하는 자도,주도하는 자도 없는 아나키 형태의 공감이지만 실적은 내로라하는 로펌을 뺨친다. 지금까지 처리한 소송이 줄잡아 100여건. 그중 70% 이상을 승소했고 현재 진행 중인 소송도 대부분 승기를 잡고 있다.

“얼마 전 종영된 한 지상파 방송의 변호사 관련 드라마의 콘티를 공감 변호사들의 일상을 소재로 완전히 바꿔버렸다면 좀더 감동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공감의 둥지를 떠나면서 든 생각이다(02-3675-7740,후원계좌=하나은행 162-910001-07637 아름다운재단).

윤재석 문화·체육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