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이주노동자인권연대는 <고용허가제 실태조사보고서>를 통해 고용허가제의 실효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박천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은 “지난 1년 동안의 고용허가제는 D학점”이라며, “산업연수제도와 고용허가제를 병행해서 실시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며, 재계약의 권리를 고용주에게만 부여한 법안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해줄 리 만무하다”고 비판했다.

모집과정에서 공개성, 투명성 확보 못해

어떤 제도든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선 먼저 해당 법안이 담고 있는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제도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면, 모집과정에서 공개성과 투명성을 확보했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많은 수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채 입국한다.

보고서는 모집과정에서 정보를 독점하는 브로커(알선 단체)가 불법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이후에도 9백$에서 최고 3천4백$를 지불해야 하는 입국 비용은 여전히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게다가 이주노동자들은 입국비용 사용 내역과 업체에 대한 정보조차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발과정에서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제도상 필요 인원의 5배수를 신청 받아 전산을 통한 추첨방식으로 선발하게 되어 있지만, 과정을 알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담당자들의 비리를 감시하고 확인할 길이 없다. 입국하기 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한국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교육’의 내용 또한 부실하다. 길게는 3주, 짧게는 8시간 진행되는 교육과정에서 한국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수료증을 받아야 한국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또 현지에서 취업을 위해 받았던 교육과, 입국 후 실제로 요구되는 작업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는 이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산업재해에 노출될 위험이 크고, 일의 효율성도 현저히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어 교육기관이 고용허가제 아래서 또 다른 브로커집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박천응 소장은 “교육기관은 비영리기관에서 운영해야 하고,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는 한국어 교육과 인권교육을 병행해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주의 근로계약 위반 여전

“입국 전 계약 당시에는 8시간 근무에 월급 651.000원을 받기로 하고 기숙사 비용과 식비는 회사가 부담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입국해 보니 근무시간이 11시간이고, 잔업수당도 계산해 주지 않았다. 세금과 식사비도 본인이 전부 부담해야 했다. 잔업 수당을 요구하면 회사가 어려워서 줄 수 없다고만 했다.” (타데로 메리. 여. 31세. 필리핀)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에도 회사에서 근로계약을 위반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을 압류하는 회사도 상당하다. 또 재계약 결정권도 사업주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회사는 계약연장을 거부할 수 있지만, 이주노동자는 회사가 재계약을 요구할 경우 거부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계약 내용과 다른 무리한 작업요구를 거부하는 경우, 해고와 강제출국 같은 위협을 받기도 한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는 “사업주의 불법행위로 인한 이주노동자의 권리 침해 시 이주노동자 본인의 의사에 따른 사업장 이동 보장을 전제로 하여 침해된 권리 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많은 단체들이 국내에서 적용되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정부 측은 몇 가지 사항을 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인권연대는 이런 노력들이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것으로,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천응 소장은 “인권단체들이 고용허가제의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나섰을 때 저지했던 것이 바로 노동부”라면서,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무관심하다고 힐난했다.

이번 보고서는 정부가 여전히 이주노동자를 ‘관리와 통제’의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냈다. 참가자들은 정부가 산업연수관리업체들을 출입국관리 대행기관으로 지정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고용허가제 시행 1년 남짓해 이 제도의 운영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음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답할 때다.